서교의 뜰

지율과 진광은 이곳의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사람, 작업, 이 드나드는 통로, 를 지나면 펼쳐져 있는 작은 지지의 마음, 이 거주하는 구조, 바닥과 벽, 에 흐르는 물, 같은 것들… 외부자라고 느끼는 두 사람은 이곳에 맺힌 상들을 눈에 담고 어림한다. 멋대로 오해하고 입맛에 맞게 조정하고 두 사람의 것을 얹어 둔다. 눈에 맺힌 것과 눈에 비친 것들이 중간 지대 서교의 뜰에서 쪼르르 샌다.

별도로 출처를 표기하지 않은 모든 사진은 본 프로그램을 마련한 지율·진광이 제공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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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공유활동이 발생하는 장소인 서교예술실험센터는 유동 인구가 많고 혼잡한 한가운데에 있다. 지율과 진광은 ‘예술실험’이란 이름을 가진 문화예술 커뮤니티를 지지하면서도, 이곳에서 일상을 구성하는 세계를 다시 생각하고 다르게 경험하는 것이 녹록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곳과 접촉 경험이 있음에도 스스로를 일종의 외부자라 여기는 두 사람은, 이런저런 사물들을 서교의 뜰이라는 별다른 용도 설정 없이 놓인 빈 곳에 배치한다. 이 과정으로 공유공간과 사용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여러 상호작용을 추상적으로 다뤄본다.

01 서교의 뜰

© 2023 스튜디오 물
© 2023 스튜디오 물

서교예술실험센터와 섞이고 만나는 중간지대로 서교의 뜰을 바라본다.

이곳에 서교예술실험센터에 대한 감정, 느낌, 편견, 판단에 관련된 설치물을 놓을 생각이다. 아주 눈에 띄지는 않지만 약간의 시간을 들여 머물 수 있었으면 한다. 이를 위해 짐을 적재하거나 담배를 태우는 데에만 쓰이는 공간을 청소할 것이다. 가짜 화분을 덜어내고 홍보용 현수막을 떼어내고 쓰레기 줍고 비질하려 한다. 정돈된 공간에서 드러난 구조가 어떨지 궁금하다. 차양, 고정용 고리, 계단식 구조의 챌판과 옆면, 정방형 바닥재에 설치물이 자리하면 어떤 흐름이 오고 가게 될까.

뒤늦게 질문하기도 한다:
이곳에 가장 오래 자리한 가짜 화분을 뒤로 치우지 않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었을까? 색 바랜 가짜 화분의 관점에서 서교예술실험센터가 어땠을까? 더 질문해 봤다면 어떤 경험을 하게 됐을까?

02 당근·채찍·덩굴·벽 드로잉

꺾어 새기고, 사이에 새기고, 옆으로 새긴다.

서교의 뜰로 진입하는 계단의 챌판과 옆판에 무언가를 새긴다. 이곳의 정면은 가로로 긴 모양새인데, 이렇게 난 방향으로 걸으면 건물의 내부로 들어가지 않더라도 서교예술실험센터라는 영역에 서 있을 수 있다. 건물과 나란한 방향으로 걷는 행위를 이곳에 일시적으로 머물거나 지나치는 상태로 읽으며, 접촉의 순간 맺어지는 관계를 나름대로 풀어본다.

새기는 것은 당근·채찍, 덩굴·벽 그림이다.

지율과 진광은 당근과 채찍이 오가는 예술지원제도의 틀 안에서도 서교의 뜰에서 발견한 덩굴과 담과 같은 관계의 양상을 발견할 수 있을지 질문했다. 우선 당근과 채찍은 관 중심의 예술지원제도를 두고 밀고 당기는 양상에 대한 비유이다. 지원제도는 당근이고, 지원과정에서 요청되는 교류 활동들은 채찍이다. 지율은 처음에 성가셨던 교류 활동을 통해 지지받고 지지하는 동료들을 만났다. 지율에게 채찍은 강제하는 힘, 귀찮게 건드는 일, 그러나 안으로 잡아끄는 에너지이자 조심스레 끈질긴 마음, 지속적인 관심이다. 진광은 당기고 떨쳐내고 기대고 떨어지는 탈부착의 운동성을 새긴다.

서교의 뜰에 자리한 덩굴과 담이 서로 붙었다 떨어지는 모습을 본다. 부착형 줄기를 가진 덩굴은 끝이 납작한 빨판으로 이곳의 벽에 붙어 있다. 닿았다가 떨어졌다가 완벽히 붙지 않고 딱 어슷한 정도로 있거나, 줄기가 떼어진 자리의 경우에는 덩굴손은 끊어졌지만, 빨판이 남아 있다. 지속되는 맞닿음의 흔적처럼 보인다. 이들을 들여다볼수록 헐거운 연결과 상호지지를 바라게 된다.

우선 눈에 담기는 것과 그것을 넘어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서교예술실험센터와 나란한 방향으로 걸어다니는 이들 눈에 당근이 보인다. 계단 챌판에 줄지어 새겨진 당근들은 제각기 다른 각도를 가지고 있다. 당근을 넘어 서교의 뜰 안쪽으로 들어오면, 밖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던 정면과 디딤판을 넘나드는 덩굴과 채찍 그림을 보게 된다. 덩굴이 두꺼운 채찍 줄기를 휘감으며 뻗어나간다. 채찍의 겉을 두르다 속을 파고들고, 되돌아 나오기를 반복한다.

03 책건물

© 2023 스튜디오 물
© 2023 스튜디오 물

공간의 구조를 축소하여 짓는다. 짓는 방법으로 책을 잇는다.

물리적으로 이곳을 구성하고 지탱하는 축으로서 바닥과 벽을 전면에, 작은 모양으로 드러낸다. 여러 전시가 딛고 기대어 왔던 구조가 무엇을 위해서가 아닌 그 자체로 등장할 수는 없을까? 한편 노출되어 있지만 쉽게 눈길 받지 못하는 것은 건물의 구조뿐만 아니라, 건물 2층 세미나실 복도를 따라 진열된 책이기도 하다. 책으로 구조물을 지어, 분명히 있지만 보지 않는 것들을 환기하려 한다. 그러나 책은 진광의 것을 사용한다. 진광이 읽으려고 마음먹었지만 결국은 잘 읽지 않았던 책들이나 거리감이 느껴지고 그렇다고 버릴 수는 없는 책들을 꺼낸다.

그림자가 안쪽으로 진다.
그림자가 길어진다.

내부를 외부로 옮겨 둔다.

빛에 따라 그림자는 구조물의 안쪽으로 졌다가 바깥쪽으로 나기도 하고 점점 길어진다. 그러다 해가 지면 경계 없이 땅 자체가 되기도 한다. 한 자리에서 계속 변하는 모습을 드러내면, 이곳이 서로 다른 전시와 작업, 사람을 여러 모양새로 담아온 긴 시간을 잠깐이라도 감각할 수 있지 않을까?

없는 상태로 있는 것이 될 수는 없을까?

서교예술실험센터로 쓰이는 건물은 유령처럼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있어왔다. 그래서 없어진다는 상상을 하지 않았다. 물론 폐관 이슈가 있어왔으나 늘 이슈에 그칠 거라 생각했던 까닭이다. 그러나 2024년부터 공간의 운영이 중단될 예정이라 하고, 이어서 드는 질문. 이곳이 없어진다면 없는 것이 될까? 없는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것인데 그럼 있는 것이라고 봐도 될까? 폐관이 언제나 이슈로 그쳤을 때처럼, 그것은 도래하지 않을 미래의 설정이면서 동시에 주기적으로 이곳을 활성화하는 현실의 조건이었기에 없는 상태로 있어 왔던 것처럼. 건물을 작게 짓고 그것을 보여주고, 이 프로젝트를 지속하는 과정에서 떠오르는 질문이다.

04 소리 나는 구조물

© 2023 스튜디오 물

남은 것으로 소리 나는 구조물을 만든 후 서로 다른 높이에 매단다.

창고에 사람들이 남기고 간 재료들을 찾았다. 양철 냄비와 악기 막대 각각 2개, 튜브 4개와 열쇠 꾸러미, 돛단배, 접시 등을 챙겼다. 이 재료들로 풍경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을 만들기로 한다. 이곳에서 어쩌면 더 이상 쓰이지 않을 남겨진 물건들이 내는 소리가 괜히 기대된다. 바람 따라 흔들리며 댕–댕– 소리 내면 좋겠다. 공간을 환기하거나 분위기를 전환하는 무언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미세한 떨림과 진동이 발생하고 파장으로 퍼져가는 장면을 사람들과 함께 느끼고 싶다. 하지만 공들여 작업한 것에 비해  * 과정 중 *  당일 구조물이 전혀 소리를 내지 않는다. 되려 시사하는 바가 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